“폴라라의 등장” 죽이 맞는 두 과학자, 일을 내다!!
폴라라는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시작됐다. 산호세 주립대학의 물리학자였던 프레드 홈스트롬(Fred Holmstrom)은 어느 날 자신의 서재에서 우연히 철 지난 <물리학 저널>을 보게 된다. 그리고 흥미로운 기사 하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것은 골프볼의 공기역학에 관한 것으로 다양한 회전 속데에 대해 딤플이 있는 볼과 없는 볼의 양력과 항력을 비교한 내용이었다. 홈스트룸은 기사를 꼼꼼히 살펴보다가 골프볼에 공기역학을 적용하면 방향성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확신했다. 당시 골프볼 메이커는 딤플의 수와 크기에 집중하며 거리를 늘리는 데만 초점을 둔 나머지 정확성에서는 부족했다. 기대에 찬 홈스트롬은 친구인 다니엘 네펠라(Daniel Nepela)에게 이 아이디어를 전했다.
두 물리학자와 화학자는 이내 의기투합했고 곧 새로운 볼을 만들기 시작했다. 먼저 기존의 딤플 볼을 구입해 디자인에 과학적 원리를 적용했다. 세 가지의 딤플 패턴을 가지고 볼의 적도 부분(볼을 지구라고 생각했을 때)은 딤플을 얕게 넣고, 양극으로 갈수록 딤플을 팠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작은 딤플을 새겼다. 과연 기대했던 대로 얕은 딤플은 수직 회전을 크게 해 똑바로 날아가게 하고 양극의 깊은 딤플은 수평 회전을 감소시켜 슬라이스를 줄여줬다.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볼은 점점 개선됐다.
1974년 6월 25일 마침내 홈스트롬과 네펠라는 새로운 딤플 디자인에 특허를 얻었다. 그리고 기존의 볼과 양극(polar)을 달리 한 이 혁신적인 볼에 폴라라(polara)라고 이름 지었다.
“폴라라의 반응” 골퍼들의 심장질환이 줄어들 것 vs 골프장은 초보들로 득실댈 것
폴라라가 나오고 나서 미디어와 골퍼들의 반응은 그것이 호평이든, 악평이든 어쨌든 뜨거웠다.
이러한 반응은 어떤 식으로든 폴라라의 성능을 인정한 것과 같았다.
홈스트롬과 네펠라는 밀려드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정신없이 볼을 만들어야 했다.
“진화한 골프볼, 폴라라로 인해 훌륭한 선수가 앞으로 백 명은 나올 것이다” - <USA 사이언스> “난이도는 낮아지고, 골프 코스는 서툰 초보들로 가득 채워질 게 뻔하다.” - <워싱턴 포스트> “이 볼은 지금까지의 기술과 연습 그리고 판단력까지 퇴화시킬 것” - <USA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골프는 좌절을 주는 경기다.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고 결혼까지 파탄시킨다. 만약 똑바로 날아가는 볼이 있다면 장수하는 데 도움을 될 것이며 이혼율을 줄이고 정신건강에 이바지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폴라라야말로 어떤 의사나 결혼상담사, 정신과 약보다도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된다. ”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폴라라의 논란” 혁신이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당대에는 언제나 이슈 또는 스캔들
슬라이스를 획기적으로 줄인 폴라라의 등장은 긴 싸움을 예고했다. 폴라라로 인해 시장이 위협받을 위기에 처한 기존의 볼 메이커와 이들의 후원을 받는 미국골프협회(USGA)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폴라라는 볼의 크기와 무게, 속도에 있어 당시 USGA의 승인 기준에 적합하도록 제조됐다. 하지만 1976년 협회의 기술부장인 프랭크 토마스는 네펠라에게 편지를 보내 폴라라 볼 실험에 속도와 크기, 무게뿐만 아니라 기존 볼과는 다른 딤플 깊이와 배열에 관한 실험들을 진행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후 협회는 드라이빙 기계와 실제 골퍼들로 하여금 폴라라 볼을 치게 했고 결과를 자세히 관찰했다.
그 결과 폴라라는 훅과 슬라이스를 줄였을 뿐만 아니라 날아갈 때도 자체적으로 방향을 수정하며 직선으로 떨어졌다. 협회는 폴라라가 게임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고 판단, 제조를 금지하기 위한 규정을 만들기로 했다. 결국, 1977년 협회는 볼의 성능이 아닌 대칭 기준에 대한 초안을 발의했다. 그리고 4년 후 공식 기준이 발표되고 형태에 관한 규정을 강화했다. 그것은 폴라라의 핵심 기술인 딤플 패턴 디자인을 더 쓰지 못하게 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USGA에 의해 불법 제품이라는 오명을 얻기 전까지 폴라라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하지만 USGA를 위시한 메이저 볼 메이커들의 폴라라에 대한 불매운동은 폴라라를 급속도록 하락세로 걷게 했다. 1985년 USGA는 폴라라와 더 이상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며 폴라라 골프공의 비승인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140만 달러에 합의하게 된다. 그러나 USGA의 소송 이전부터 계속된 반 폴라라 선전과 비 공인구라는 낙인 때문에 시장에서 밀려났고 골프 역사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되었다.
“폴라라의 부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폴라라의 화려한 부활
2011년 5월 뉴욕타임스는 흥미로운 기사를 게재했다. 바로 슬라이스 안나는 골프볼 폴라라에 관한 것이었다. 사라질 뻔한 폴라라를 다시 부활시킨 건 에어로 X 골프사다. 에어로 X 골프사는 폴라라의 판권을 사들여 새로 제품을 출시했다. 이는 미국 내에서 다시 한번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뉴욕타임스의 기사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세계 각국으로 일파만파 퍼졌다.
슬라이스가 고민인 전 세계 수많은 골퍼들의 뜨거운 반응은 폴라라 인터넷 사이트를 다운시켰고 전화는 마비시켰으며 재고는 하루아침에 동이 나게 만들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아마존을 통해 구매 후 한 달도 넘게 기다려야 폴라라 볼을 겨우 얻을 수 있었다. 20여 년이 지나는 동안 볼과 드라이버를 비롯한 골프 장비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열 명의 골퍼 중 여덟 명은 슬라이스로 고민한다. 레슨 프로, 아마추어 고수, 클럽 피터 등 전문가들이 말하는 처방은 수없이 많지만, 여전히 어렵다.
만약 슬라이스를 위한 간단하고 쉬운 해결법을 찾는다면
폴라라를 써라. 이게 정답이다. 우리는 프로가 아니다.
그저 골프를 즐겁게 하고 싶을 뿐.
폴라라는 그런 골퍼들을 위한 볼이다.